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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옥수수 수염 나오고 설레다가 알맹이 없어서 실망한 날

by !lifestyle 2026. 3. 4.

 

텃밭을 가꾸다 보면 마치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말을 이제야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을 때만 해도 그저 파란 싹이 올라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작물이 자라나면서 제 기대감도 쑥쑥 커져만 갔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기대를 모았던 주인공은 단연 옥수수였습니다. 키가 제 가슴팍을 넘어서고 어느덧 제 정수리 위까지 훌쩍 자랐을 때의 그 늠름함 이란 정말 장관이었거든요. 하지만 수확의 기쁨을 맛보려던 찰나에 마주한 그 듬성듬성한 알맹이들은 제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그 설레었던 기다림과 처참했던 실망의 기록을 진솔하게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옥수수 수염의 유혹과 15cm의 기다림

옥수수 대가 제 키보다 커진 2m 남짓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잎사귀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옥수수 자루 끝에 발그레하고 부드러운 수염이 돋아나기 시작했지요. 그 수염을 처음 본 날의 설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옥수수 수염이 갈색으로 변하면 수확할 때가 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매일 아침 텃밭으로 달려가 그 수염의 색깔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옥수수 자루의 길이는 어느덧 15cm를 훌쩍 넘겨 20cm 가까이 되어 보였고 , 손으로 겉을 살짝 만져보았을 때 느껴지는 묵직함은 저를 완전히 방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옥수수가 그저 물만 잘 주면 알아서 알알이 꽉 들어차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물 하루 걸렀더니 다음 날 아침 잎끝이 살짝 말려 들어가는 것 을 보고는 혼비백산하여 물을 듬뿍 주기도 했었죠. 실제로 물 관리에 정성을 다하기 위해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꼬박꼬박 물조주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옥수수의 수염이 드디어 짙은 초갈색으로 변하며 바스락거리기 시작했을 때, 저는 드디어 완벽한 수확의 순간이 왔다고 확신했습니다.

껍질 속에 숨겨진 빈약하고 충격적인 진실

드디어 수확의 날이 밝았습니다. 장갑을 끼고 옥수수 대를 단단히 잡은 뒤, 옥수수 자루를 아래로 힘껏 꺾었습니다. 툭 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제 손에 들어온 옥수수는 겉모양만큼은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더 훌륭해 보였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초록색 껍질을 한 겹 한 겹 벗겨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껍질을 반쯤 벗겼을 때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란 알맹이가 꽉 차 있어야 할 자리에는 뽀얀 속살의 속대만 덩그러니 보였고, 알맹이는 마치 이 빠진 할아버지의 입처럼 여기저기 몇 개만 듬성듬성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길이 15cm가 넘는 그 긴 옥수수에 제대로 박힌 알맹이는 고작 10개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아예 수정조차 되지 않은 빈 공간이었지요. 하나만 그렇겠지 싶어 옆에 있던 다른 옥수수도 따 보았지만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어떤 것은 아예 알맹이가 하나도 없이 매끈한 속대만 들어있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의 허탈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동안 들인 공과 시간, 그리고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흘린 땀방울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제 무지함에 대한 원망이 밀려왔습니다.

실패 원인 분석: 바람과 수분의 관계

실패의 쓴맛을 본 후 저는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옥수수는 자가수분을 하는 작물이지만, 그 방식이 매우 독특합니다. 꼭대기에 있는 수꽃에서 꽃가루가 떨어져 아래쪽에 있는 옥수수 수염(암꽃)에 닿아야 알맹이가 맺히게 됩니다.

일렬 심기의 치명적인 실수

저는 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옥수수를 일렬로 길게 심었던 것이 화근 이었습니다. 옥수수는 바람을 이용해 수분하기 때문에 모여 심어야 꽃가루가 서로에게 잘 전달됩니다. 제가 심은 방식으로는 바람이 불어도 꽃가루가 옆에 있는 옥수수의 수염에 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 것이지요.

옥수수 수염 하나가 알맹이 한 알

또한 옥수수 수염 하나하나가 알맹이 한 알과 연결되어 있다 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수염이 100가닥이라면 그중 꽃가루가 묻은 수염만 알맹이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수염이 나오면 끝인 줄 알았지, 인위적으로 대를 흔들어 수분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마치 오이 수분 시기를 놓치면 오이가 기형으로 자라거나 열매가 떨어지는 것처럼, 옥수수도 이 수분 과정이 생명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다른 작물들에서 배운 시행착오의 교훈

사실 이번 농사에서 저를 힘들게 한 것은 옥수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텃밭의 다른 식구들도 저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주었지요.

방울토마토 곁순 제거의 중요성

방울토마토 곁순 제거를 제때 해주지 않았더니, 줄기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며 말 그대로 정글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는 어떤 게 원줄기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고, 결국 영양분이 분산되어 토마토 크기가 방울이 아니라 콩알만 해지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곁순 하나가 자라나서 전체 수확량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지요.

깻잎 벌레와의 전쟁

깻잎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깻잎을 보며 흐뭇해하던 것도 잠시, 어느 날 아침에 보니 깻잎 벌레 떼가 습격하여 잎사귀를 그물망처럼 만들어 놓았더군요. 구멍이 숭숭 뚫린 깻잎을 보며 약을 치지 않고 키우겠다는 제 고집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달았습니다. 결국 손으로 일일이 벌레를 잡으며 한나절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 농사를 위한 다짐과 진정한 수확의 의미

이번 옥수수 농사는 비록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다음번에는 반드시 알이 꽉 찬 옥수수를 수확하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우선 다음 농사 때는 옥수수를 일렬로 심지 않고 2줄이나 3줄로 모아서 심어 바람에 의한 수분이 잘 되도록 배치할 계획입니다. 수염이 나오기 시작하면 매일 아침 옥수수 대를 가볍게 흔들어 꽃가루를 충분히 묻혀주는 인공 수분 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알맹이가 차오르는 시기에 맞춰 영양분이 부족하지 않도록 적절한 추비를 주는 것도 계획에 넣었습니다. 텃밭을 일군다는 것은 단순히 작물을 얻는 행위를 넘어,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제 옥수수는 알맹이가 없었지만, 그 실패 덕분에 제 지식의 창고에는 새로운 알맹이들이 가득 찼습니다. 다음에는 꼭 여러분께 노란 알맹이가 보석처럼 박힌 옥수수 사진을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농사는 역시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 는 옛말이 하나 틀린 게 없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긴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