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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가지 가지치기는 너무 어려워(장마 때 한쪽이 부러진 경험)

by !lifestyle 2026. 3. 1.

 

욕심이 불러온 참사와 무성했던 가지 숲의 실체

처음 텃밭을 시작했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작은 모종이 흙에 뿌리를 내리고 초록빛 잎사귀를 하나둘 펼치는 모습은 마치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과도 같았지요. 그중에서도 보랏빛 꽃을 탐스럽게 피우는 가지는 제 텃밭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애정이 너무 과했던 탓일까요? 아니면 초보 농부의 무지함 때문이었을까요? 장마가 몰아치던 어느 여름날, 제가 가장 아끼던 가지 나무 한쪽이 처참하게 꺾여버린 사건은 제 농사 인생에서 잊지 못할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가지는 자라는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처음 심었을 때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였던 줄기가 어느새 제 허벅지 높이까지 쑥쑥 자라더군요. 그때 저는 단순히 잎이 많고 줄기가 굵으면 좋은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옆에서 자라던 방울토마토 곁순 제거는 매일같이 꼼꼼하게 해주면서도, 이상하게 가지 앞에서만큼은 가위질이 망설여졌습니다. 무성하게 뻗어 나가는 가지들이 모두 열매를 맺어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던 것이지요. 가지의 키가 50cm를 넘어서고 잎사귀 하나가 제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보다 커졌을 때 , 텃밭은 그야말로 정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이때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가지는 방울토마토 곁순 따기와는 또 다른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더군요. 원줄기와 첫 번째 꽃이 피는 지점 아래의 곁순들을 적절히 정리해주어야 통풍이 잘되고 햇빛이 골고루 스며드는데, 저는 그저 잎이 아까워서 그대로 방치하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가지 줄기가 꽤 단단해 보여서 지지대 하나에만 의지해도 충분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지는 열매가 커질수록 그 무게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길이 15cm쯤 됐을 때의 가지 무게 는 수분을 가득 머금어 꽤 묵직해지는데, 이런 열매들이 한 가지에 여러 개 매달리니 줄기가 받는 부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마철 쏟아진 폭우와 찢겨 나간 가지의 비명

사건은 며칠째 이어지던 장마 기간에 터지고 말았습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굵은 빗줄기가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지요. 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을 때 서둘러 텃밭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실로 참담했습니다. 가장 굵고 튼실하게 자라나 20cm 가까운 열매를 두 개나 매달고 있던 가지의 한쪽 축이 완전히 찢어지듯 꺾여 진흙 바닥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부러진 단면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빗물을 머금은 무거운 잎사귀들과 비대해진 열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줄기의 분기점이 하중을 견디다 못해 찢어져 나간 것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미리 가지치기를 통해 공기 흐름을 만들어주고 하중을 분산시켰더라면 어땠을까요? 무성한 잎사귀들은 빗물을 그대로 받아내어 돛처럼 바람에 흔들렸고, 결국 지렛대 원리에 의해 가장 약한 연결 부위가 터져버린 셈입니다. 특히 장마철에는 습도가 높아지면서 줄기가 평소보다 연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 하루 걸렀더니 시들해지던 녀석들이 비를 맞고 생기를 되찾는 줄만 알았는데, 실상은 과도한 수분 흡수로 인해 조직이 비대해지며 물리적인 충격에 훨씬 취약해진 상태였던 것입니다. 꺾인 가지에 매달려 있던 아직 채 익지 않은 어린 가지들을 수확하며 저는 제 욕심이 작물을 망쳤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오이 수분과 깻잎 벌레보다 더 까다로운 가지 관리의 기술

텃밭을 가꾸다 보면 작물마다 고유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이 수분 같은 경우에는 벌과 나비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일이 인공수분을 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깻잎 벌레 들은 자고 일어나면 잎을 구멍 숭숭 뚫어놓아 매일같이 숨바꼭질하듯 잡아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겪어보니 가지의 수형 관리와 가지치기는 이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인내와 판단력을 요구하더군요.

방아다리 아래 곁순 제거의 중요성

가지치기의 핵심은 'Y'자 형태의 수형 을 만드는 것입니다. 첫 번째 꽃인 방아다리 가 피었을 때, 그 아래에서 올라오는 튼튼한 곁순 두 개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제거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주 줄기 3개 정도가 안정적인 균형을 이루며 자라게 됩니다. 저는 이 원칙을 무시하고 4개, 5개의 곁순을 다 키우려다 보니 영양분이 분산되었고, 결과적으로 줄기 하나하나의 내실이 부족해졌던 것입니다.

하엽 제거를 통한 통풍 확보

또한, 가지는 잎이 워낙 크기 때문에 아래쪽 잎들을 주기적으로 따주는 '하엽 제거' 가 필수적입니다. 지면에서 20cm 정도까지는 시원하게 공간을 비워주어야 흙에서 튀어 오르는 병균을 막고 통풍을 원활하게 할 수 있습니다. 깻잎 벌레 를 잡기 위해 잎 뒷면을 뒤지는 정성만큼이나, 가지의 통풍을 위해 가위질하는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실패 원인 분석과 다음 농사를 위한 뼈아픈 다짐

사건 이후 저는 왜 이런 실패가 발생했는지 차근차근 분석해 보았습니다.

첫째, 지지대 설치의 미흡함

가지는 워낙 옆으로 넓게 퍼지기 때문에 일자형 지지대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적어도 'A'자형이나 사각형 형태의 틀 을 만들어 가지들이 기대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어야 했습니다. 15cm 이상 자란 열매 가 비바람에 흔들릴 때 발생하는 물리적 에너지를 줄기 하나가 온전히 감당하게 한 것이 저의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둘째, 비료 조절의 실패와 웃자람

질소질 비료를 너무 과하게 주다 보니 줄기만 껑충하게 자라는 '웃자람' 현상 이 나타났습니다.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였지만 사실 속은 텅 빈 것처럼 약했던 것이지요. 오이 수분 이 잘 되어 열매가 맺힐 때 기뻐하듯, 가지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때마다 그 무게에 맞는 지지 보강 작업을 즉시 해줬어야 했습니다.

셋째, 장마 대비 전정 작업의 부재

이제 저는 다음 농사를 준비하며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첫 꽃이 피는 즉시 아래쪽 곁순은 뒤도 안 돌아보고 정리하겠습니다. 가지의 줄기가 벌어지는 각도에 맞춰 개별적인 유인줄을 설치해 무게를 분산시키겠습니다. 특히 장마가 오기 직전에는 반드시 과감한 전정 을 통해 잎의 양을 30% 이상 줄여 수분 하중과 풍압을 최소화할 것입니다. 텃밭 농사는 단순히 작물을 키우는 행위를 넘어 자연의 섭리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가지 한쪽이 부러진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저는 식물의 균형과 비움의 미학 을 배웠습니다. 무조건 많이 매달고 크게 키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작물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남겨두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다음번 제 텃밭의 가지들은 부러지지 않고 당당하게 보랏빛 영광을 뽐낼 수 있도록, 이제는 가위를 든 제 손에 망설임보다는 확신을 담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