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고추 모종 심고 두 달, 왜 아직도 고추가 안 열릴까
텃밭 농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역시 파릇파릇한 모종을 사 와서 흙에 옮겨 심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시장에서 고추 모종 10포기를 사 들고 오던 날, 머릿속으로는 이미 빨갛게 익은 고추를 수확해 고춧가루를 만드는 상상까지 마쳤습니다. 그런데 모종을 심은 지 벌써 두 달, 즉 6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제 텃밭의 고추들은 도무지 열매를 맺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키는 제 허벅지 높이인 60cm를 훌쩍 넘겨 무성하게 자랐는데, 왜 정작 우리가 원하는 고추는 보이지 않는 걸까요? 오늘은 제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은 고추가 열리지 않는 이유와 그 과정에서 얻은 뼈아픈 교훈들을 가감 없이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욕심이 불러온 참사, 질소 과다와 웃자람의 역설
처음 텃밭을 일굴 때 저는 의욕이 너무 앞섰습니다. 남들보다 더 크고 튼튼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에 밑거름을 정말 아낌없이 넣었거든요. 특히 질소 성분이 많은 비료를 듬뿍 주었더니 고추 잎이 제 손바닥보다 더 큰 15cm 정도로 넓어지고 줄기도 아주 굵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잘 자라는 줄 알고 뿌듯해했지만, 이게 바로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영양 성장과 생식 성장의 불균형
식물은 영양 상태가 너무 좋으면 굳이 열매를 맺어 번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몸집을 불리는 영양 성장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이른바 웃자람 현상 이 나타난 것이죠. 잎은 진한 녹색을 띠며 무성해졌지만 꽃눈은 형성되지 않거나, 꽃이 피더라도 힘없이 툭툭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초기에는 질소보다 인산과 가리 성분이 적절히 배합되어야 꽃이 잘 피고 열매가 단단해진다는 것 을 몰랐습니다. 비료를 많이 준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는 농사의 진리를 첫 두 달 동안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물 하루 걸렀더니 우수수 떨어지는 꽃봉오리의 경고
고추는 물 관리가 정말 까다로운 작물이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장마철에는 배수가 안 되어 걱정이고, 가뭄 때는 물이 부족해 난리가 나죠. 제가 가장 실수했던 부분은 바로 물주기의 규칙성이었습니다.
수분 스트레스가 꽃에 미치는 영향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던 어느 날, 바쁜 일정 때문에 물주기를 딱 하루 걸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텃밭에 가보니 고추 줄기 끝의 어린 꽃봉오리들이 노랗게 변해서 바닥에 수북이 떨어져 있더라고요. 고추는 수분이 부족하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꽃부터 떨어뜨립니다. 마치 오이 수분 과정에서 암꽃과 수꽃이 제대로 만나지 못해 오이가 굽어버리는 것처럼, 고추도 적절한 수분 공급이 끊기면 수정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겉흙이 마르기 전에 일정한 시간에 맞춰 꾸준히 물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방아다리 아래의 비밀과 곁순 정리의 중요성
고추 농사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방아다리 관리입니다. 고추 줄기가 자라다 보면 처음으로 Y자 모양으로 갈라지는 지점이 생기는데, 이를 방아다리라고 부릅니다. 이 지점에 첫 번째 고추꽃이 피게 되는데, 저는 이 꽃이 너무 소중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과감한 제거가 필요한 이유
하지만 이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첫 꽃에 영양분이 집중되다 보니 전체적인 나무의 성장이 더뎌지고, 위쪽으로 뻗어 나갈 에너지를 밑에서 다 써버리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죠. 또한 방아다리 아래쪽으로 자라나는 곁순들을 제때 제거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습니다. 방울토마토 곁순 제거를 소홀히 하면 금방 숲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고추도 곁순을 방치하면 통풍이 안 되고 햇빛이 골고루 들지 않습니다. 나중에야 눈물을 머금고 가위로 아래쪽 잎들과 곁순들을 15cm 높이까지 시원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통풍을 개선하고 나서야 비로소 위쪽에서 새로운 꽃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불청객 총채벌레와 진딧물이 꽃을 삼키다
고추가 안 열리는 이유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역시 해충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꽃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주 작은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바로 꽃노랑총채벌레였습니다.
꽃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해충들
이 녀석들은 꽃 속에 들어가 즙액을 빨아먹어 꽃을 기형으로 만들거나 수정이 되지 않게 방해합니다. 고추 잎 뒷면에는 진딧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이는 곧 고추 모자이크 바이러스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깻잎 벌레 습격 때만큼이나 당황스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고추는 자가 수분을 하는 작물임에도 불구하고, 해충이 꽃의 생식 기능을 망가뜨려 놓으니 두 달이 지나도록 열매 구경을 못 했던 것입니다. 매일 아침 꽃 속을 들여다보며 벌레 유무를 확인하는 정성이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실패를 넘어 더 풍성한 수확을 위한 다짐
두 달 동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저는 농사가 단순히 씨 뿌리고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식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비료는 과유불급이며, 물주기는 생명줄과 같고, 곁순 정리는 성장을 위한 배려라는 사실 을 말입니다.
다음 농사를 위한 세 가지 약속
- 첫째, 모종을 심을 때 간격을 40cm 이상 넉넉히 띄워 통풍을 극대화하겠습니다.
- 둘째, 밑거름보다는 웃거름 위주로 조심스럽게 영양을 공급하겠습니다.
- 셋째, 꽃이 피기 시작하면 미량 원소인 붕소를 적절히 시비하여 수정률을 높이겠습니다.
비록 올해 두 달은 헛농사에 가까운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지금이라도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처했으니 곧 작고 소중한 고추들이 조롱조롱 매달릴 것이라 믿습니다. 텃밭 농사를 짓는 모든 분들이 저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무더운 여름 시원한 고추 수확의 기쁨을 누리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