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보 농부의 무모한 도전과 방임 재배의 시작
처음 텃밭을 시작했을 때 제 머릿속에는 오직 수확의 기쁨만이 가득했습니다. 시장에서 사 온 오이 모종 네 개를 흙에 심으며 그저 물만 잘 주면 주렁주렁 열매가 맺힐 줄 알았지요. 당시 저는 지지대나 오이망의 중요성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자연 그대로 키우면 더 생명력이 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고도 위험한 환상 에 빠져 있었습니다.
호박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며 자라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제 판단은 정말이지 큰 오산이었습니다. 모종을 심고 나서 약 2주 정도는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아침마다 물을 주러 나가면 잎이 한 장 두 장 늘어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했거든요.
성장 속도를 과소평가한 대가
하지만 오이의 성장 속도는 제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본잎이 대여섯 장 나오기 시작하더니 줄기가 어느새 30cm 이상 쑥 자라나더군요. 그때라도 지지대를 세워줬어야 했는데, 저는 옆 칸에 심어둔 방울토마토 곁순 제거에만 온 정신을 쏟고 있었습니다. 방울토마토 곁순을 따주지 않으면 정글이 된다는 소리는 어디서 들어서 매일같이 가위질을 해댔지만, 정작 바닥으로 눕기 시작한 오이 줄기는 애써 외면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무모한 방임이었지요.
넝쿨의 무서운 성장 속도와 통제 불능의 현장
오이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자랐습니다. 수치를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지만, 기분 탓인지 자고 일어나면 줄기가 10cm씩은 길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줄기 끝에서 뻗어 나오는 덩굴손들이 공중을 휘저으며 무언가 붙잡을 것을 찾고 있는 모습이 처절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붙잡을 지지대가 없으니 이 녀석들이 결국 향한 곳은 옆집 깻잎 밭이었습니다.
이웃 작물과의 갈등과 수분 문제
깻잎 벌레 가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며 약을 치고 있던 저에게 오이 덩굴은 또 다른 골칫덩이가 되었습니다. 오이 덩굴손이 깻잎 줄기를 칭칭 감아버리니 깻잎들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죠. 줄기 길이가 1m를 넘어서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습니다. 지지대를 타고 위로 올라가야 할 에너지가 바닥을 기어가는 데 소모되다 보니 줄기는 엉망으로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냥 나중에 오이만 잘 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오이 수분 에서 발생했습니다. 바닥에 잎들이 겹겹이 쌓여 있으니 벌과 나비가 꽃을 찾아오기가 무척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꽃은 피는데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제 불안감은 커져만 갔습니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오이가 마주한 가혹한 현실
드디어 첫 오이가 달렸을 때의 그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길이가 15cm쯤 됐을 때 수확하려고 보니, 오이의 모양이 우리가 흔히 아는 곧은 형태가 아니라 부메랑처럼 심하게 굽어 있었습니다. 바닥에 닿은 채로 자라다 보니 흙의 저항을 받아 똑바로 뻗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지열과 통풍 불량이 불러온 비극
게다가 땅에 닿은 부분은 햇빛을 보지 못해 노랗게 변색되어 있었고, 습기 때문에 껍질 일부가 짓무르기까지 했습니다. 정말이지 시장에서 파는 매끈한 오이와는 천지 차이였지요. 더 큰 시련은 물 관리에서 찾아왔습니다. 여름철 무더위에 물 하루 걸렀더니 바닥에 닿아 있던 잎들이 지열을 그대로 흡수해서인지 순식간에 시들어버리더군요.
지지대를 세워 공중에 떠 있었다면 통풍이라도 잘 되었을 텐데, 흙에 딱 붙어 있으니 습도 조절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통풍 불량으로 인해 잎 뒷면에 하얀 가루가 내려앉는 노균병까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깻잎 벌레 잡으려다 오이 병해충까지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니 텃밭 가꾸기가 즐거움이 아닌 고역으로 다가왔습니다.
실패를 통해 배운 오이 재배의 정석과 다음을 위한 다짐
이번 실패를 통해 뼈저리게 느낀 점은 식물의 본성을 거스르면 안 된다 는 것이었습니다. 오이는 하늘로 뻗어 올라가려는 성질을 가진 덩굴 식물인데, 그것을 억지로 땅바닥에 눕혀 키웠으니 병이 나고 모양이 망가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나중에 전문 서적을 찾아보니 오이는 지지대를 세워 수직으로 키워야 잎 사이사이에 통풍이 원활해지고 광합성 효율도 극대화된다고 하더군요.
성공적인 다음 농사를 위한 계획
- 첫째: 모종을 심자마자 튼튼한 A자형 지지대 를 설치할 것입니다.
- 둘째: 줄기가 20cm 정도 자랐을 때부터 부드러운 끈으로 유인 작업 을 해줄 계획입니다.
- 셋째: 지면에서 30cm 높이까지의 잎과 곁순은 과감하게 제거해 통풍 길 을 만들어주려 합니다.
이번에는 방울토마토 곁순만 신경 쓰느라 오이를 방치했지만, 다음에는 두 작물 모두 균형 있게 돌볼 수 있겠지요? 비록 첫 농사는 구부러지고 못생긴 오이 몇 개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 실패의 경험이야말로 그 어떤 영양제보다 소중한 거름 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초보 농부 여러분, 오이는 절대로 바닥에 기어 다니게 두지 마세요. 지지대 하나가 오이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