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인 선택이 반복되던 시기, 그 혼란 속에서 찾은 질서

어느덧 2025년의 해가 밝았습니다. 책상 위 달력을 넘기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불과 1, 2년 전의 제 모습이 마치 남의 일처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무언가에 홀린 듯 결정을 내리고, 뒤돌아서서 깊은 후회를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꽤 오랫동안 그런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단순히 성격이 급해서라고 치부하기에는 제 삶의 궤적이 너무나도 불안정하게 흔들렸던 그 시기, 충동적인 선택이 반복되던 때의 이야기 를 솔직하게 꺼내보려 합니다.
이 글은 저의 부끄러운 실패담이자, 그 혼란 속에서 제가 가까스로 찾아낸 삶의 질서에 관한 기록입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스마트폰 결제 버튼 위에서 손가락을 망설이고 있거나,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분이 계신다면 제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작은 브레이크 가 되어드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정적 소비와 간편 결제의 덫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돈 쓰기 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갑을 꺼낼 필요도 없이 얼굴 인식 한 번이면 몇십만 원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니까요. 저의 충동성은 가장 먼저 통장 잔고를 파고들었고, 제 재정 상태를 병들게 했습니다.
한밤중의 쇼핑 카트와 도파민 중독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이성은 마비되고 감정만이 살아납니다. 당시 저는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소위 '금융 치료' 라는 명목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배달 앱으로 매일같이 야식을 시키는 것은 예사였고, SNS 광고 알고리즘에 뜨는 운동기구, 영양제, 심지어 잘 입지도 않을 옷들을 무지성으로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결제 완료 문구가 뜰 때 뇌에서 분비되는 그 짜릿한 쾌감, 즉 도파민 이 문제였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전형적인 '즉각적 보상'에 대한 갈망 입니다. 낮 동안 회사와 사회에서 억눌렸던 욕구가 밤이 되자 통제력을 잃고 분출되는 것이죠. 택배 상자가 문 앞에 쌓일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만, 박스를 뜯고 나면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 짙은 허무함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를 보면 1인 가구의 소비 지출 중 식료품과 오락 문화비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시기가 있는데, 저 또한 그 데이터의 일부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할부의 마법이 주는 착각
"이 정도는 할부로 하면 한 달에 커피 몇 잔 값이야."
제가 가장 자주 하던 자기 합리화였습니다. 신용카드의 무이자 할부 기능은 당장의 고통을 미래로 유예시키는 달콤한 악마와도 같습니다. 당시 제 월 소득 대비 신용카드 대금 비율은 무려 60%에 육박했습니다. 재무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적정 비율이 10~20% 수준임을 감안하면, 저는 사실상 빚을 내어 생활하고 있었던 셈 입니다. 미래의 소득을 미리 당겨쓰는 행위가 반복되다 보니, 정작 월급날이 되어도 통장은 그저 돈이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만성적인 불안을 야기했고, 그 불안을 잊기 위해 또다시 소비를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구독 서비스가 갉아먹는 고정 지출
2025년인 지금은 구독 경제가 더욱 고도화되었지만, 당시에도 저는 온갖 OTT 서비스와 쇼핑 멤버십, 뉴스레터 등을 구독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에 1만 원, 5천 원 하는 소액들이 모이니 꽤 큰 금액이 되더군요. 무서운 점은 제가 그 서비스들을 제대로 이용하지도 않으면서 '언젠가 보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해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형적인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 입니다. 해지하는 귀찮음이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구독료의 고통보다 크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이렇게 새는 돈들은 저의 종잣돈 형성을 가로막는 주범이었습니다.
커리어의 방황과 포모 증후군의 습격
충동적인 성향은 비단 소비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방향키인 커리어조차 기분 내키는 대로 돌려대기 일쑤였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면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지금 이 파도에 올라타지 않으면 영원히 도태될 것만 같은 공포, 바로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 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끈기 부족을 열정으로 포장하다
한때 개발자 붐이 일었을 때, 저는 다니던 직장이 적성에 안 맞는다며 덜컥 고액의 코딩 부트캠프를 결제했습니다. 하지만 그 열정은 딱 2주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기초 문법이 어려워지자 금세 흥미를 잃었고, "아, 이건 내 길이 아니야"라며 또 다른 도피처를 찾았습니다. 그 다음은 주식 투자 강의였고, 그 다음은 스마트스토어 창업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나는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것은 그저 싫증과 회피의 반복 이었습니다. 한 우물을 깊게 파지 못하고 여기저기 얕은 구덩이만 파놓은 꼴이었죠. 이력서에는 짧은 경력들이 줄을 이었고, 이는 오히려 채용 시장에서 '진득하지 못한 지원자'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꾸준함이 없는 열정은 그저 충동일 뿐 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 비교
인스타그램이나 링크드인을 보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구는 대기업으로 이직하고, 누구는 사업이 대박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조급해졌습니다.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닐까?'
이 불안감은 충분한 검토 없는 이직이나 무리한 투잡 시도로 이어졌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실패를 불렀고, 그 실패는 다시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2023년 무렵,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갓생(God+인생)' 열풍은 역설적으로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선택의 역설과 결정 피로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결정을 방해합니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가 말한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 을 저는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반대로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선택한 후에도 끊임없이 '가지 않은 길'을 동경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점심 메뉴부터 인생의 진로까지, 모든 것을 최적의 선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은 뇌의 에너지를 고갈시켰습니다. 이를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 라고 부르더군요. 피로가 누적된 뇌는 결국 가장 쉽고 본능적인 선택, 즉 충동적인 선택을 내리게 됩니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충동성
도대체 왜 나는 이럴까, 자책만 하다가 문득 관련 서적과 논문들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제 의지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뇌의 메커니즘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두엽과 편도체의 전쟁
우리 뇌에서 이성적인 판단과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부위는 '전전두엽' 입니다. 반면 공포, 불안, 욕망 등 원초적인 감정을 담당하는 곳은 '편도체' 입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우리 몸은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면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됩니다. 즉,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편도체가 시키는 대로 폭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충동구매를 하고 섣불리 퇴사를 고민했던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수면이 부족했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했던 것은 어불성설이었습니다.
도파민 디톡스의 필요성
스마트폰의 숏폼 콘텐츠와 자극적인 정보들은 뇌를 '도파민 과잉' 상태로 만듭니다. 더 강하고 빠른 자극 없이는 만족하지 못하는 뇌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진득하게 앉아서 업무를 보거나 책을 읽는 행위가 불가능해지는 것이죠. 충동적인 선택은 지루함을 탈피하고자 하는 뇌의 발버둥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깨닫고 의도적으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멍하니 있는 시간을 늘리는 '도파민 디톡스' 를 시도해야만 했습니다.
삶의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는 행동할 차례였습니다. 2024년을 기점으로 저는 제 삶의 '디폴트 값'을 바꾸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세웠고, 2025년인 지금은 꽤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자부합니다. 충동성을 잠재우는 저만의 실천 방법을 공유합니다.
72시간의 법칙과 장바구니 숙성
물건을 사고 싶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저는 무조건 '72시간' 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지금 당장 안 사면 품절될 거야!"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도 무시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3일이 지나면, 사고 싶었던 물건의 80%는 "굳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퇴사나 이직 같은 중대사는 기간을 더 늘려 2주를 기다렸습니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의 결정은 100% 후회를 부릅니다. 감정의 파도가 가라앉고 이성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그것이 저를 구했습니다.
가계부 쓰기와 현금 흐름의 시각화
자동 이체와 신용카드는 돈의 흐름을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체크카드 사용을 늘렸고, 매일 밤 가계부를 썼습니다. 엑셀이나 앱도 좋지만, 직접 손으로 적는 행위 가 주는 경각심은 남다릅니다.
"오늘 내가 쓸모없는 곳에 3만 원을 썼구나."
이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꽤 고통스럽지만, 다음 날의 소비를 억제하는 가장 강력한 백신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아끼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을 되찾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작은 성취로 자존감 회복하기
거창한 목표 대신 아주 사소한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물 2리터 마시기', '매일 30분 산책하기', '아침에 이불 개기' 같은 것들입니다.
충동적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시작은 창대하나 끝이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작은 성공 경험이 쌓이니 뇌는 서서히 "나도 꾸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기 효능감 은 불안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충동적인 선택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환경 설정 바꾸기
의지력을 믿지 마세요. 인간의 의지는 생각보다 나약합니다. 저는 충동을 유발하는 환경 자체를 차단했습니다.
- 쇼핑 앱 알림은 모두 껐습니다.
- SNS 앱은 메인 화면이 아닌 폴더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습니다.
- 신용카드 한도는 대폭 줄이고, 주 거래 카드를 체크카드로 바꿨습니다.
- 저녁 10시 이후에는 스마트폰이 '수면 모드'로 바뀌어 화면이 흑백으로 변하게 설정했습니다.
환경을 바꾸니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동이 교정되는 효과를 보았습니다.
글을 마치며
지금 돌이켜보면 그토록 충동적이었던 이유는, 결국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 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모른 채 세상의 기준에만 맞추려다 보니 끊임없이 흔들렸던 것이죠.
충동적인 선택이 반복되던 시기를 지나오며 저는 비싼 수업료를 치렀습니다. 금전적인 손실도 있었고, 시간 낭비도 있었죠.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제 욕망을 들여다보고 조절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지금 무언가를 충동적으로 저지르고 싶으신가요? 잠시만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마셔 보세요. 그리고 딱 하루만, 아니 72시간만 그 결정을 미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 짧은 멈춤이 여러분의 2025년을,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르니까요.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그 실수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니까요. 저의 이 부끄러운 고백이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